내 고향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하늘과 들판이 맞닿아 있고, 바닷물이 밤낮으로 품앗이하듯 강하구 아가리로 들락거리고, 눈썹처럼 생긴 황포 돛배가 물길을 따라 날아다니던 그런 곳이다. 버스 종점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낙동강 하구 ‘조만포’다. 버스 터미널에서 차장 총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조마이 가요! 조마이~ 막찹니다! 막차요~.” 막차는 읍내에서 밤 10시 30분에 출발한다.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오던 ‘조마이’. 초등학교 다닐 땐 조마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른들이 조마이하니까 덩달아서 아이들도 조마이하고 따라 불렀다. 중학생이 되어서 어렴풋이 조마이는 우리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들판 끄트머리인 산 모랭이를 돌아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들판 동네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가 사는 동네는 들판 강변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외딴 마을이다. 마을 앞 강둑에서 강줄기를 바라보면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포구가 어렴풋이 보인다.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에 ‘조마이포’가 있다고 친구가 말해주어서 나는 비로소 조마이포가 어딘지 알게 되었다.
밀물 때는 낙동강 하구에서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친구네 집 앞까지 들어차고, 썰물에 하구의 작은 섬들과 모래톱은 고개를 내밀고 움츠렸던 몸뚱아리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구(河口)는 글자 그대로 강의 입이다. 바닷물이 그 아가리로 들어왔다가 뒤채여 밍밍한 강물과 함께 포구의 뒷간으로 몸서리치며 빠져나간다.
조마이포의 정식 명칭은 조만포(潮滿浦)다. 바닷물이 가득 찬 포구 조만포, 포구에서 뭍으로 거슬러 오르면 들판을 가로질러 뱀이 꿈틀대듯 조만강이 굽이쳐 지나간다. 이곳 경상도 시골 사람들은 ‘만’ 자가 들어간 글자를 쉽게 발음하지 못해 ‘만’을 “마이”라고 부른다. ‘재만’은 “재마이”로, ‘조만포’는 “조마이포”로.
나는 친구와 조마이포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개펄 냄새를 맡으며 근방에서 잡히는 조개와 물고기를 파는 난전을 구경하기도 했다. 포구에서 바라보면 낙동강 하구 쪽으론 모래톱이 군상처럼 수런거리고, 철새 도래지 을숙도는 바다와 마주 보고 시비를 거는 것인지 갈대를 건들거린다. 조마이포 앞바다에 떠 있는 노적봉과 가덕도가 육지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어 포구는 고깃배들이 정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을숙도는 시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는데, 섬을 에워싼 갈대숲과 크고 작은 모래톱 위로 항공기가 종일 뜨고 내린다. 늦가을 을숙도에 가면 은빛 갈대밭 위로 철새들의 군무와 고기잡이 황포 돛배가 바람을 업고 조만강을 거슬러 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런 풍경은 소설이나 그림이 아니고서야 여간 보기 쉽지 않을 터, 조마이포에선 이런 풍경을 예사로이 볼 수 있었다.
을숙도 옆 갈대밭 속에 카페와 주점이 어우러진 에덴공원이 있었다. 재수할 때 나와 친구는 에덴공원 갈대밭 원두막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당시 유행하던 음악을 들으면서 인생을 논하기도 하고,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젊음을 불사르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군 입대를 한 후엔, 친구가 소개해 준 여자 친구와 에덴공원의 갈대숲에서 막걸리를 들이켜면서 사랑을 논하고 인생철학을 읊조리기도 했다.
내 젊음이 스쳐 지나간 을숙도엔 여태껏 또 다른 청춘들이 우정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막걸리 잔을 기울일 게다. 조마이포에는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노적봉이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허리춤을 여미며 뭍으로 나가고 싶어 보채고 있을 게다. 섬은 뭍을 갈망하고 사람은 기억을 더듬어 섬으로 가고 싶어 한다.
을숙도와 가덕도 섬사람들은 사시사철 바다를 짊어지고 산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조마이포를 거쳐 조만강에 황포 돛배가 올라오면 한가득 물고기와 해조류가 풍년이었다. 해조류인 꼬시래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초무침으로, 바다 붕장어는 장어탕으로 밥상에 오르고, 꼬막은 보리밥에 비벼 먹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황포 돛배를 타고 을숙도를 거쳐 조만포로, 섬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조마이포로 가서 을숙도 해질녘 저녁노을과 철새들의 군무도 바라보고 싶다. 늦기 전에 옛 친구와 을숙도 갈대숲에서 동동주 잔을 나누고 싶다. 조마이포 앞바다에 떠 있는 노적봉과 어부들의 고향 가덕도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조마이 가는 막차는 수가리 산모퉁이를 돌아서 포구로 향하고, 하구와 바다의 섬은 뭍을 그리워하고 있을 게다.